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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기사] 軍폭력 희생자 감싸안은 따뜻한 판결
관리자 13-12-30 10:27 4040
가혹행위로 정신질환 앓게 된 50代, 30년 만에 국가배상 받게 돼]

입대 1년5개월 만에 依病전역, 정상 생활 못하고 병원 전전… 뒤늦게 동생이 국가배상 청구
국가의 소멸시효 만료 주장에 법원은 신의성실 원칙 앞세워 "이자 포함 4억대 지급" 판결
군대에서 구타로 정신병에 걸려 33년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50대 남성 측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배상을 받게 됐다. 법이 정한 기한보다 20년 늦게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이례적으로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당사자와 가족의 피해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부산에서 어머니의 그릇 가게를 돕던 박현기(54)씨는 스물한 살이던 1980년 4월 입대했다.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 배치된 그는 동작이 늦다는 이유로 맞는 일이 잦았다. 하루는 한 선임병이 박씨를 때려눕힌 후 군홧발로 머리와 목을 심하게 구타했고 박씨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멍한 얼굴로 연병장에 쭈그리고 앉아 낙서를 하기도 했다. 그는 정신분열 및 조울증, 측두엽 간질 진단을 받고 입대 1년 5개월여 만인 1981년 9월 전역했다.

29일 오후 경남 양산의 한 정신병원 면회실에서 박현기(오른쪽)씨가 동생 현태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3년 전 군대에서 구타로 정신병을 앓게 된 현기씨는 ‘웃어보라’는 동생의 말에 영문도 모르고 웃기만 했다. /남강호 기자
제대 후 증상은 더 심해졌다. 거래한 적 없는 은행에서 "내 돈 7000만원을 내놓으라"며 난동을 부렸고, 밤마다 잠 안 자고 떠들어대는 바람에 같이 사는 박씨의 어머니와 친형 부부, 남동생도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가족은 박씨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바보'가 된 박씨도, 그를 바보로 만들어 내보낸 군대도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런 둘째를 보며 어머니는 그저 가슴만 쳤고 뒤치다꺼리에 지친 형제들의 가정은 파탄이 났다.

비싼 병원비 탓에 치료와 퇴원을 반복하던 박씨는 1989년부터는 아예 경남 양산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속을 태우던 어머니는 1997년 세상을 떠났고 형이 2003년 간암으로 숨지자 박씨 간호는 동생 현태(49)씨가 떠맡았다. 오토바이 수리점을 하는 현태씨는 자신도 극심한 간 질환과 피부건조증에 시달렸지만, 15년째 매달 왕복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형을 돌봐야 했다.

2010년 현태씨는 군대에서 가혹 행위로 정신 질환을 앓게 된 사람들이 재판에서 이겼다는 기사를 접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손해배상은 불법행위 발생일로부터 10년 내에 청구해야 하는 민법의 소멸시효에 가로막혔다. 변호를 맡은 원영섭 변호사는 "국가의 위법이 분명하면 소멸시효를 극복할 수도 있다"고 현태씨에게 용기를 줬다. 현태씨는 2010년 10월 법원에서 금치산자인 형의 법정대리인으로 지정받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원 변호사는 30년 전 내무반 '전우'를 찾아내 증언대에 세우는 등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였다. 국가는 예상대로 "1981년 5월부터 시효가 진행돼 1991년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강력하게 맞섰다.

그러나 법원은 현태씨의 손을 들어줬다. 2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는 "국가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원고에게 2억400만원과 이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수십년치 이자를 감안하면 모두 4억~5억원가량 된다고 한다.

수지김 사건 등 시국 사건에서 법원이 뒤늦게 국가배상을 인정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박씨의 경우와 같은 비정치적 사안에서 소멸시효를 초월한 판결은 매우 드물다. 재판장인 강태훈 부장판사는 "국가의 위법 행위로 인해 30년 넘게 정상적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박씨와 그의 가족에게 아무런 배상·보상을 하지 않은 점 등을 적극 고려했다"고 말했다. 현태씨는 "안 당해보면 몰라요. 우리 소송이 비슷한 고통을 겪어온 다른 분들에게 도움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軍폭력 희생자 감싸안은 따뜻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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